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풍경 속에서 가슴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안토니 가우디가 평생을 바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입니다. 이 경이로운 건축물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돌 하나하나에 성경의 진리를 새겨 넣은 ‘침묵하는 설교’와 같습니다. 14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이 성당은, 불완전한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완벽함이 스며드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한 인내와 숭고한 헌신을 필요로 하는지를 웅변합니다. 우리는 흔히 완성된 천국만을 고대하며 오늘 우리가 딛고 선 현실을 가볍게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하늘의 설계도를 가슴에 품고, 이 땅의 거친 돌들을 땀 흘려 다듬어 나가는 ‘거룩한 노동’ 속에 존재합니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자)**의 설교는 이러한 ‘영적 건축’에 대한 심오한 신학적 비전을 제시합니다. 특히 주기도문의 핵심인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은, 단순한 반복적 암송이 아니라 성도가 역사와 현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장엄한 선언입니다.
관계의 회복: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의 기도는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장재형 목사는 기도의 첫머리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통해 기도의 대상과 우리 사이의 인격적 관계를 명확히 세울 것을 강조합니다. 막연한 우상이나 추상적인 절대자에게 빌어보는 기복 신앙과 달리, 기독교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특별한 권속의 관계를 맺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이 증거하는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는 신비로운 연합의 신비입니다.
이 친밀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삶의 첫 번째 목적을 발견합니다. 바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간구입니다. 세상은 인간을 번호나 기능으로 환원시키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임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완성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은밀한 공간에서도 정결함을 지킬 수 있는 힘은, 내 삶이 하나님의 명예를 짊어지고 있다는 거룩한 책임감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모든 호흡과 삶의 터전은 결국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당이 되어야 합니다.
건축적 믿음: 땅 위에 지어지는 하나님의 성읍
설교의 가장 강력한 통찰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해석학적 지평을 넓히는 데 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영어 성경의 미세한 번역 차이를 통해 흥미로운 영적 원리를 짚어냅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이 “in earth”라고 표현하며 세상의 내면 깊숙이 누룩처럼 스며드는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한다면, NIV 성경의 “on earth”는 대지 위에 가시적으로 세워지는 구체적인 건축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신앙의 열매가 관념적인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됨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타락을 이유로 비관에 빠지거나, 반대로 인간의 힘만으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모두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균형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갈망하는 종말론적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하나님의 통치를 구체화하는 데 있습니다. 대학을 세우고, 도서관을 건립하며, 복음의 불모지에 선교지를 개척하는 모든 행위는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삶의 근육으로 증명해내는 과정입니다. 이는 평생 돌을 깎아 하나님의 영광을 형상화하려 했던 가우디의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역사의 파수꾼: 용서로 열어가는 미래
복음의 진수는 현실 회피가 아닌 현실의 변혁에 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가 쳇바퀴 도는 순환론적 역사관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창조와 타락을 지나 회복과 완성으로 나아가는 ‘직선적 역사관’을 가진 주역임을 일깨웁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머지않았음을 확신하는 파수꾼처럼, 성도는 주님의 날을 간절히 고대하며(Earnest expectation) 거룩한 행실로 그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거대 담론에서 시작해 우리의 아주 사소한 일상까지 파고듭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현재’, 용서를 통해 매듭짓는 ‘과거’, 그리고 시험과 악으로부터의 보호를 구하는 ‘미래’가 이 짧은 기도 속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특히 과거의 상처와 얽힌 관계를 ‘용서’로 풀어내지 못하면 신앙은 결코 전진할 수 없습니다. 은혜 입은 자로서 과거의 부채를 청산하고, 오늘 주어진 사명의 벽돌을 쌓으며, 장차 임할 최후 승리를 확신하는 삶—이것이 주기도문을 체화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는 머뭇거림을 멈추고 삶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외침은 우리의 가정, 일터, 그리고 선교지라는 구체적인 ‘땅’ 위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한 것처럼, 우리는 공학적인 정밀함과 건축적인 견고함을 갖춘 믿음으로 무너진 세상을 보수하며 소망을 건설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척박한 땅부터 남미의 열정 가득한 도시까지, 우리가 밟는 모든 곳에 하늘의 뜻이 성읍처럼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기도는 입술의 고백으로 시작되어, 삶이라는 거룩한 노동으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