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신비 – 장재형 목사

Ⅰ. 아담으로부터 전가된 죄와 인간 실존의 문제 로마서 5장 12절부터 21절까지는 바울이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하고, 이 둘이 각각 인류를 죄와 사망 안에 혹은 의와 생명 안에 묶어 두는 ‘대표’가 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핵심 본문이다. 장재형 (장다윗)목사는 이러한 텍스트를 해설할 때, 특별히 “한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많은 이가 생명을 얻는다”는 논리를 통해 복음의 능력과 ‘연대성’의 중요함을 설파한다. 이 대목은 기독교 … Read more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 장재형목사

1.  믿음의 본질과 갈라디아서 3장의 중요성 갈라디아서 3장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갈라디아서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장에서 “믿음”이라는 단어를 14번이나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믿음의 관계, 또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이방인들까지 포함하는 구원의 보편적 성격이 갈라디아서 3장에 집약적으로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가 종교개혁 시대부터‘자유의 복음’이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자유와 은혜, 그리고 믿음을 강력하게 선포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 3장에 담긴 사도바울의 핵심 가르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수십 년에 걸쳐 한국과 세계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며, 율법주의에 빠져 구원의 본질을 놓치는 이들을 향해갈라디아서 3장의 핵심 메시지를 강조해왔습니다. 특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 즉 ‘이신득의(以信得義)’가가장 중요한 교리로 자리 잡아야 함을 반복해서 설파해 왔는데, 이는 예루살렘 회의(사도행전 15장)에 근거하여 교회가공통적으로 합의한 “이방인도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진리와 동일한 맥락에 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회의 때 결론 지어진 복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의 본질이었습니다. 율법으로는 죄와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진리를 재확인한 결정이었습니다. 유대주의자(혹은 거짓 교사들)는 ‘할례’와 ‘율법의 준수’가 없이는구원이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사도 베드로와 바울, 야고보 등은 회의를 통해 할례나 여러 의식적 규례가 구원의 필수조건이 될 수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라는 사실은 초대교회 당시부터 기독교의 가장중요한 구원론적 핵심이 되었고, 갈라디아서 3장은 그 핵심을 명료하게 드러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전체에서 자신이 전한 복음이 어떤 의미이며, 예루살렘의 사도들과도 일치된 복음임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그 복음이란 “율법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다수의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로부터의 반발을 샀지만,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다룹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 침투해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할례까지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선동하는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 가운데 일부는 원래 은혜로, 믿음으로 자유를 얻었으면서도 다시 ‘율법적인종교성’ 안에 갇혀버렸습니다. 그래서 3장 1절에서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고 강력하게 책망합니다. 그들은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보았음에도, 다른 복음을 따르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하는 바울의 호통은, 오늘날 교회가들여다봐야 할 중요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장재형목사 역시 여러 차례 설교와 강연, 문서 사역에서 “갈라디아서 3장의 초점은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믿음으로 얻는구원의 확실성”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율법이 죄를 보여주고,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율법으로 죄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성경적 진리를 되풀이해 가르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저주와 죄값을담당하심으로써, 율법이 보여주는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셨음을 선포하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기독교 구원의 본질입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신앙생활에서 자주 듣는 흔한 용어지만, 갈라디아서 3장은 이 ‘믿음’의 정의와 의미를 자세히 파고듭니다. 과연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왜 가능한지에 대해 구약의예시(특히 아브라함)까지 들어가며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과 맞닿아 있습니다. 즉, 갈라디아서 3장에서 바울은 이 주제를 가장 논리적이고 강력하게 설명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구원론의 핵심 진리를 놓치지않으려면 반드시 갈라디아서 3장이 가르치는 바를 사수해야 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오늘날에도 많은 성도들이 ‘믿음으로구원받는 것’을 머리로만 알지, 그것이 실제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율법이나 규례, 교회 내의전통, 혹은 사회적·문화적 기준 등에 매여 스스로를 정죄하고 더 나아가 다른 이들까지 정죄하는 모습이 되풀이된다”는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바울이 말한 ‘자유의 복음’을 다시금 교회 안에서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해 왔습니다. 결국, 갈라디아서 3장은 ‘믿음’과 ‘율법’이라는 두 가지 큰 축을 대조하여 보여주면서, 오직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보편적·궁극적 진리를 제시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는 바울의 강한 어조는, 단순한 질책이 아니라 ‘율법의굴레에 다시 매이지 말라’는 절절한 호소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바울의 외침을 되새기며, 은혜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 율법주의와의 충돌, 그리고 바울의 논증 갈라디아서 3장의 앞부분에서 바울이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라고 묻는 대목(갈 3:2)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이미 성령을 체험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미 성령을 받은 이들이라면, 구원은 율법이나 의식이아니라 ‘믿음’으로 임했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은사 체험을 했든, 거듭남을 체험했든, 방언이나 예언 같은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든 간에, 그것이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은 결과로일어났다는 점을 회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약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선조로 꼽히는 아브라함을 끌어옵니다(갈 3:6). 왜냐하면율법주의적 거짓교사들이 늘 강조하는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율법과 할례로하나님 앞에 인정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하나님을 믿었을 때”이며, 그 믿음을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신 사건이 먼저였습니다(창 15:6). 장재형목사 역시 다양한 설교와 성경 해설에서, 창세기 12장부터17장까지 이어지는 아브라함 서사를 인용하며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 이미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은 시점이 있었다”는점을 자주 환기시킵니다. 할례는 창세기 17장에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여기시고”라는 선언은 ‘할례’가 도입되기 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오경의 구체적 조항은, 아브라함이 살았던 시대로부터 430년 뒤에나 주어진 것입니다(갈 3:17의 언급).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의로움은 율법이나 할례때문에 얻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순종함으로(히 11:8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약속의 땅과 ‘하늘의 뭇별 같은후손’을 약속받았고, 낯선 땅으로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그가 무할례시에 받은 의”라고 부릅니다(롬 4:9-10).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건이 먼저이고, 할례는 그 의로움을 확인하는 표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도 갈라디아서 3장과 평행을 이루는 구절들이많습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을 다윗의 고백과 연결해말합니다(롬 4:6-8). 그리고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행위가 아닌 전적인 ‘믿음’ 덕분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연결 구도를 특별히 강조하는데, 갈라디아서 3장을 알면 로마서 4~5장도 더 깊이이해할 수 있고, 로마서를 잘 이해하면 갈라디아서 3장이 한층 더 명확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말미암아 살리라”(합 2:4, 갈 3:11, 롬 1:17)는 구약의 뿌리로부터 시작된 주제이자, 신약 전체 구원론의 골간입니다.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주어졌음은,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는 바울의 선언(갈 3:7, 롬4:11-12)으로 잘 드러납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을 자기 민족의 조상으로만 여겨왔던 유대인들에게, 바울의 선포는파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복음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부터 12절에서 바울은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신 27:26 인용)고까지 말합니다. 율법을 완벽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3:10). 오히려 율법은 죄를 더 선명히 드러내어 죄책과정죄감을 강화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56절에서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했을 때, 율법이죄를 해결하기보다 죄의 근거를 더 또렷이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자는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저주 아래 머무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는 사실이 갈라디아서 3장13~14절에 선포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라는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신 21:23)는 율법적 규정조차 스스로받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를 죄와 사망과 저주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고, 성령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게 하셨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십자가로 모든 죄값이 지불되었기에,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사실을 믿는 믿음뿐이다”라고요약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는, 궁극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점진적 ‘성화’를 향해 나아가게됩니다. 이러한 갈라디아서 3장의 가르침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되풀이되는 율법주의적 경향, 즉 “교회법이나 전통, 의식과 예배 형식, 혹은 특정 윤리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는 식의 주장을 향한 강력한 반박이 됩니다. 물론 장재형목사을 비롯해정통 신학자들은 “율법 무용론이나 도덕성 경시”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세상 그 어느 종교보다 높은 윤리와사랑을 요구합니다. 다만 그것이 구원의 조건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구원을 이루셨으니, 우리는 그 은혜를따라 복음을 순종하며, 성령 안에서 기쁨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들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와 완전히 다른차원에서 율법을 ‘이행’하고 ‘성취’하는 참된 길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매우 논리적이고 성경 해석에 근거한 변증을 통해, 거짓교사들이 퍼뜨리는 할례와 율법준수를 통한 구원론을 전면 반박합니다. 핵심은 “아브라함조차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하물며 할례없는 이방인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논증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며, 그 모두가 아브라함의 영적자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성령의 역사, 그리고 오늘의 적용 갈라디아서를 ‘자유의 복음’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율법에서 벗어난 ‘방종’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자유하게 된 복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3장 뒷부분(특히 3:23~25)에서 바울은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 아래 매인 바 되어,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다”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율법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는 ‘몽학선생’(갈 3:24)이며, 죄를깨닫게 하되 죄를 해결하는 근원적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우리가 이 율법의 굴레와저주에서 벗어나 ‘믿음의 자유’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 3장을 중심으로 한 바울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이제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령이 주시는 능력과 열매로 살아간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능력’이며, 성령은 우리의칭의(Justification)를 견고케 하고, 그다음 단계인 성화(Sanctification)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장재형목사의 목회와설교에서도, 믿음으로 받는 성령의 내주(內住)와 인도하심이 어떻게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지 많이 다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건은 이미 단번에 완성된 구원의 길을 열었고, 그 구원의 효력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우리안에서 계속 자라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육체의 정욕”과 “영의 소욕” 사이의 갈등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도 자세히 나오지만, 사실 3장부터 이미 “율법아래서 갇혀 있었다는 표현”을 통해 암시됩니다. 우리 본성은 여전히 죄성을 지닌 육체이기에, 율법을 통해 죄를 자각할 수는있어도, 스스로 죄를 끊어낼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죄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롬 8장 참조). 율법이 외적인 규범으로 죄를 지적한다면, 성령은 그 내면에서부터 우리를 새롭게 하시어 “의롭다 함”에 합당한 삶으로인도하십니다. 이 점에서 장재형목사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성도는, 더 이상 규칙과 금지 조항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하지않는다. 오히려 은혜로 인해 자유를 얻고, 그 자유를 선한 목적과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 쓰게 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결국 갈라디아서 3장이 말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이 진리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날마다 실천적으로 맞닥뜨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율법’과 ‘은혜’ 사이에서혼동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았음에도 종종 ‘내가 주어진 규범을 잘 지키지 못하면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두려움, 혹은 내 노력과 선행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잘못된 습관이 여전히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갈라디아서 3장과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 결정을 기억할 때, 우리는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이라는 기독교의구원론적 표지를 다시금 붙들게 됩니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율법주의로 흐르면, 영혼을 자유케 하는 복음의 능력이 약화되고, 서로를 정죄하며 형식적인 경건을추구하는 공동체가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어 “반대로 참된 복음을 붙들면, 성도들은 성령의 권능 가운데 선한 열매를 맺고, 타인을 섬기며 죄를 이기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삶을 산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자유의 복음’이야말로, 갈라디아서 3장을통한 성령의 음성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누구든지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듯이,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의롭다 함을 받고, 성령의 내주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삽니다.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이신득의(以信得義)”라는단순하고 분명한 진리입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 사도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라”(벧전 3:15)고권면합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 3장이 제시하는 믿음의 정의와 율법의 한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가져다준 구원의 능력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드는 기둥이 되어, 주님을 알지못하는 이들에게도 변함없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근거가 됩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수십 년간 다양한 설교와 저술, 제자 양육 등을 통해 꾸준히 일깨워 왔으며, “이 복음을 붙드는 자들에게는 어떤 장벽도 무너지고, 어떤 종류의 종교적굴레에서도 벗어나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늘 가르쳐 왔습니다. 결국 갈라디아서 3장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어떤 방식으로 받았느냐, 율법 행위로냐 믿음으로냐?” 그리고이렇게 답합니다.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요, 삶으로 이어져야 할 진리입니다. 복음 안에서 자유로워지고, 성령 안에서 성장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하나를 이루는 교회와 성도가 되길 갈라디아서 3장은요청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늘 붙들어야 할, 가장 단순하나 가장 심오한 신앙의 핵심입니다.

바울의 고별설교 – 장재형목사

장재형(장다윗)목사가 사도행전 20장의 말씀을 통해 전하는 핵심적 가르침은 바울이 드로아에서부터 앗소를 거쳐 밀레도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는 그 선교적 여정 속에서 드러나는 ‘겸손과 눈물’의 목회 정신이다. 이 정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겪는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결코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며, 동시에 지체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잃지 않는 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장재형 목사는 이 본문을 해설하면서, … Read more

영적전쟁 – 장재형(장다윗)목사

서론 에베소서 6장 12절의 말씀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대함이라”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을 대하는 관점의 기초이자 핵심이며, 장재형 목사는 여러 설교와 강의를 통해 이 말씀의의미와 실제적 적용 방법을 강조해 왔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며, 그 세계에는 마귀가 이끄는 조직적인 악의 세력이 있고, 모든 성도는이들과 더불어 씨름해야 한다는 사실이 본문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제의 근원을 단순히 인간의 혈과 육, 눈에 보이는 갈등과 문제로만 제한해서는안 된다는 점을 바울이 명료하게 지적했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적”의 정체와 그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영적 실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면, 우리는 문제의 뿌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인간적인 수준의 대립에만 그치게 된다. 그러므로 정사와 권세, 이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이미 승리를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어떻게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싸움에서 실제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는가 하는 점 역시 중요한 과제다. 에베소서는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이 무엇인지, 성도가왜 이 싸움에서 담대히 서야 하는지를 교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장재형 목사가 여러 현장 설교에서 역설하듯, 영적 전쟁을올바로 이해하지 않으면 교회는 왜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지를 놓치고, 세상과 마귀의 계략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본 글에서는 장재형 목사의가르침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을 중심으로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첫째, 영적 전쟁과 정사와 권세에 대한바른 이해에 대해서 논의한다. 둘째, 평안의 복음과 전신갑주를 통한 영적 승리에 대해서 심도 있게 살펴본다. 이 두 주제를 통해 교회와 성도가 왜이 싸움을 피할 수 없으며, 어떻게 이미 이루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우리 삶 속에 적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1부. 영적 전쟁과 정사와 권세에 대한 바른 이해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바울은 사람이 겪는 갈등이나 문제가 단순한 인간적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인간이 아니라, 그들의 배후에 있는 영적 권세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말씀이 교회에 주어진 ‘영안(靈眼)’과 같다고 설명하면서, 이구절에 기록된 “정사와 권세,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분류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바울이 한 구절 안에 네가지 서로 다른 표현을 썼다는 것은, 그의 시대에도 악령들의 조직적 활동이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사와 권세에 대해서 말하자면, 헬라어 원어로 정사(아르헤, Archē)는 ‘시작’이나 ‘근원’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통치자 혹은 우두머리라는 뜻을갖는다. 이는 곧 루시퍼를 비롯한 최고위 악령의 존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는데, 요한계시록 12장 7절 이하에서 하늘에서 쫓겨난 “옛 뱀”이자 “큰용”이 바로 이 정사를 대표하는 존재다. 그는 타락하기 전에 천사장의 위치에 있었다고 추정되며, 계시록은 그가 하늘에서 떨어져 온 땅을 꾀는 자가되었음을 묘사한다. 권세(엑소usia, Exousia)는 통치권을 실제로 행사하는 세력으로, 정사 아래에서 실무적인 지휘와 공격을 담당하는 것에가깝다. 사탄이 대장군 격이라면 권세들은 장교나 참모들처럼 볼 수 있다. 이들은 실제로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사회·정치·문화 전반에 영향을미치고, 공중 권세를 잡고 죄와 어둠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다.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라는 말은 “코스모크라토르(cosmocrator)”라는 단어로 표현되는데, 이는 세상을 통치하거나 지배하는 자들을의미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들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조직이 세상 제도와 권력자들에게 결탁해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라고 설명하며, 역사 속의대량학살이나 반인륜적 범죄가 단순히 인간의 힘이나 잔인함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악행을 대규모로벌이는 데에는 이 영적 세력의 힘이 크게 작동한다. 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전쟁, 인종 청소, 조직적 범죄, 기괴한 폭력 사건 등은 인간이 가진죄성도 원인이지만, 그 죄성을 철저히 조종하는 악의 조직 또한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흔히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서의 천국”을 떠올리면 안 되며,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설명된 “공중 권세잡은 자가 역사하는 영역”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곧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영광이 임한 영역이 아니라, 사탄과 그 부하 악령들이 현실적으로활동하는 중간적 영적 공간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전 세계의 도시나 국가, 여러 영역에 침투해 사람들을 무지와불순종으로 이끈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구원받았음에도 이들과의 씨름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를 강조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승리에참여했음에도, 아직 사탄의 세력은 최후의 심판 전까지 발악적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마귀는 실제로 지능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으며, 성도들이 이를 알고 경계하지 않으면 쉽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영적 무지를 악령들이 가장좋아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둠의 세력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이들이 펼치는 미혹과 계략에 그대로 휘말리고, 영적으로 둔감해진다. 그러나우리는 하늘과 땅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기에, 그 승리에참여한 교회는 마귀와 그의 조직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담대히 맞서 싸워 그들을 제압하고 결박된 영혼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위치에있다. 정사와 권세,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기도와 선교, 복음 전파, 교회 사역 전반에 결정적인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단지 사람의 행위만 보고 분노하거나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적”을 제대로 식별할 때, 기도와복음의 능력으로 더 효과적인 싸움을 할 수 있다. 특히 교회가 이 부분을 소홀히 다룬다면, 세상의 문화나 정치 권력 앞에서 수세적으로만대응하다가 본연의 영적 권세를 상실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고, 영적 전쟁의 전략을 성경대로 세워나가는 것이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장재형 (장다윗)목사는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이 제시한 전신갑주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제로취하는 것”이 영적 전쟁의 핵심 열쇠라고 역설한다. 바울은 단지 이론적인 차원에서 “악령의 존재를 알라”라고 말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인 대응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6장 12절이 정사와 권세의 실체를 밝히는 말씀이라면, 6장 10~18절 전체는 그 실체와 맞서는 교회의 무장상태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전신갑주의 구성을 자세히 살펴본 뒤, 평안의 복음과 기도를 통해 어떻게 실제적인 승리를 거둘 수있는지를 짚어볼 것이다. 제2부. 평안의 복음과 전신갑주를 통한 영적 승리 에베소서 6장 10~18절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잘 알려진 본문이다. 바울은 여기에서 마귀의 궤계를 넉넉히 이기기 위해 성도가 반드시 취해야 할영적 무장 상태를 여섯 가지로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기도를 당부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을 “영적 전쟁에서 필수적인 병기 목록”이라고 표현하며, 예나 지금이나 모든 세대의 교회가 이 무장으로 악한 세력을 대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먼저 진리의 허리띠에 대해 말하자면, 고대 전사들이 헐렁한 옷자락을 고정하기 위해 허리띠를 단단히 매듯, 성도도 진리로 무장하여 흔들림 없이서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말씀이며, 곧 복음이기도 하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라고 하신 예수님의선언이 이를 증명한다. 악령의 첫 번째 공격 수단은 늘 거짓말이며, 성도가 진리를 모른 채 살아가면 사탄의 공격에 휘말리기 쉽다. 장재형 목사는진리의 허리띠를 지니려면, 말씀과 복음이 우리의 삶 전체를 지탱하는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인 의의 흉배는 흉갑으로서 우리 가슴을 보호하는 장비에 해당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십자가로 말미암아 주어진 은혜의 의다. 사탄은 종종 “너는 죄인이다, 자격이 없다”라는 정죄의 화살을 날리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은자임을 알고 떳떳이 서면 마귀의 공격이 관통하지 못한다. 장재형 목사는 의의 흉배를 붙인 사람은 단지 정죄에서 면제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의를 사모하고, 삶 속에서 거룩과 공의를 실천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의로 무장하면, 마귀의 어떤 죄책감 유발이나거짓 음모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세 번째 평안의 복음의 신은 복음을 향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상징한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15절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아름다운가”라고 언급했고, 이는 발이 곧 복음을 세상에 확장하는 매개가 됨을 뜻한다. 장재형 목사는 “전신갑주는 수세적인 방어만을 말하지 않는다. 발을 신어서 앞으로 나아가듯, 교회는 복음으로 공세적으로 세상을 점령해야 한다”라고 역설한다. 이 신이 평안의 복음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아가는전쟁은 일반 세상의 폭력적 전쟁과 달리,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선물하는 전쟁이다. 네 번째 믿음의 방패는 마귀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내는 강력한 무기다. 성경은 “믿음의 방패로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할 수 있다”라고말하는데, 이는 사탄이 만들어 내는 의심, 불안, 분노, 탐심 등의 생각들이 믿음의 확신 앞에서 무력해짐을 시사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 방패가개인의 믿음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적 믿음을 상징한다고도 설명한다. 로마 군대가 방패를 서로 연결해 적의 화살 비를 막아냈듯, 교회가 함께믿음으로 뭉쳐 서로를 지원할 때 그 어떤 영적 공격도 뚫고 들어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구원의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머리는 생각과 인식의 중심이며, 사탄이 가장 먼저 흔들고 싶어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성도들이 “내가 정말 구원받은 것인가”라는 의심에 사로잡히면 마음과 생활 전반이 약해진다. 구원의 투구를 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구원을 단단히 믿고,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삼으셨음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그래서 사탄이 어떤 거짓말로 공격해 와도, 구원의 확신을 잃지 않는다. 여섯 번째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은 전신갑주 중에서 유일하게 공격적인 무기 성격을 지닌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물리치셨듯, 우리는 말씀을 아는 만큼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성령의 조명으로 이해하고 선포되는말씀만이 영혼을 뚫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이 말씀을 무장한 교회는 사람들에게 진리와 생명을 선포하며, 회개와 거듭남을일으킨다. 바울은 여섯 가지 무장 외에 마지막으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통해 깨어 있으라고 당부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전신갑주에 진정한 생동력을 부여하는동력이라 부르며, “기도 없이 전신갑주는 대개 머릿속 지식에 그치고 만다”라고 지적한다. 교회가 전신갑주를 갖추되 기도를 소홀히 하면 실전에서무기를 활용하지 못하는 군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기도는 곧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통로이자, 영적 전쟁터에서 정확히적을 식별하고 공격하도록 돕는 레이더 역할을 한다. 결국 평안의 복음과 전신갑주를 통한 영적 승리는 교회와 성도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교회는 이미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높여주신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사탄의 세력이 교회를 결국 이길 수 없다. 문제는 성도들이 이 사실을 얼마나 믿고 취하는가에 달려 있으며, 전신갑주를입고 실제로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세상 한복판에서 수세적이 아니라 공세적으로 복음을 전할 때, 어두운 영역은빛 앞에서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총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과 사랑이 이끄는 복음으로, 교회가 밟는 모든 땅을 성령의 통치아래로 가져오는 것이 영적 전쟁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 영적 전쟁은 결코 사람을 미워하거나 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죄와 어둠의 결박에서 자유케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복음의신발을 신고 나아가는 성도는 두려움 대신 담대함을 갖게 되고, 원수라 여겨지던 사람들조차 회개와 변화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음을 확신한다. 이는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이며, 에베소서 전체가 말하는 교회의 높은 부르심과도 일맥상통한다. 결론적 적용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은 단순히 “마귀가 있다”라는 지적 수준을 넘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향해야 한다”는 구체적 실천을 촉구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 부분을 거듭 강조하면서, 영적 세계를 모르는상태로는 결코 세상 문제의 근본 뿌리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알려 주고자 한다. 모든 문제 뒤에 있는 죄와 불순종, 악령의 개입이 분명히존재하기에, 성도는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의식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를 선포하신 이상,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하거나 패배주의에 빠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전신갑주로완전히 무장할 때, 세상 곳곳에 침투해 있는 어둠의 세력은 약화되거나 무너진다. 교회가 빛을 발하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우리가 진리와 의, 평안과믿음, 구원과 말씀으로 영적 공격과 방어를 균형 있게 갖추면, 어떤 영적 공격도 더는 강력하지 못하다. 교회는 함께 이 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라고하며 “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라는 구절이 붙어 있다. 전신갑주는 개인적 무장이기도 하지만, 군대 전체가 함께 무장해야 최상의 효과를 낸다. 교회가 기도와 말씀 안에서 연합하여,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려 준다면, 거대한 영적 전쟁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영적 전쟁은 이 땅에서의 삶 전체를 포함한다. 구체적으로는 예배, 선교, 구제, 봉사, 사회 참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도들은 날마다믿음의 방패를 들고, 복음의 신을 신고, 구원의 투구로 생각을 지키며, 성령의 검인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마귀의 거짓을물리치고,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불의와 혼돈의 현장에 하나님의 공의와 질서를 세워 가는 모든 것이 영적 전쟁의 실제적 양상이다. 장재형 목사는 많은 사역 현장에서 실제로 이러한 원리가 적용될 때, 더딘 것 같아 보여도 점진적이고도 확실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증언한다. 교회가영적 전쟁의 본질을 깨닫고 복음과 기도로 무장하면, 가정이 회복되고, 중독에서 벗어나며, 지역 사회가 복음화되는 역사가 가능해진다. 교회 안에덮인 갈등이나 미움마저도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할 때 제 자리를 찾게 되며, 마귀의 틈타는 계략을 문틈부터차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12절과 6장 10~18절이 제시하는 바를 온전히 취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의 빛 안에서, 영적 전쟁의 현실과전신갑주의 실제를 날마다 묵상할 때, 교회는 더욱 강해지고 어둠은 물러간다. 교회가 깨어 있을 때,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영들은 더는 임의로 역사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를 이루셨고, 교회는 그 승리를 “믿음으로” 현실 세계에 적용해 나가는 사명을 맡았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전쟁을 치르는 삶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두려워하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평안의 복음을 신발 삼아세상 구석구석으로 달려나가고, 믿음의 방패로 공동체를 함께 지키며, 성령의 검인 말씀을 선포하여 흑암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행동이 된다. 그렇게복음의 평안으로 무장한 성도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이 권세를 우리가 받아들여 적용하기만 하면, 영적싸움에서 참된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마무리 기도문 예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이 아닌 정사와 권세,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악의 영들에 대한 것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적 세계를 바로 인식하여, 마귀가 역사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악의 세력 앞에서 결코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이 이미 이기신 싸움에 참여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전신갑주로 무장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진리와 의, 평안의복음, 믿음, 구원, 말씀을 통해 강건해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기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깨어 있게 하시고, 교회 공동체가 서로를위해 구할 때, 어둠의 세력이 무너지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보게 해 주옵소서. 세상 한복판에서도 복음의 신발을 신고 나아가며, 악한 영들의 결박속에 있던 이들을 해방시키는 교회가 되게 인도해 주옵소서. 에베소서 전체가 보여주는 교회의 부르심과 영광을 기억하며,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믿음으로 당당히 싸우게 해 주옵소서.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약과 권면 영적 전쟁은 혈과 육이 아닌 배후의 정사와 권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십자가와 부활로 마귀와 그 세력의 권세를 깨뜨리셨으며, 교회는 그 승리를 실제적으로 누릴 특권을 부여받았다. 우리의 역할은 이 영적 사실을 믿고취하여,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기도로 깨어서 수많은 결박된 자들을 자유케 하며, 어둠을 빛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인 말씀, 그리고 모든 기도와 간구로 무장한 교회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장재형 목사는 이말씀을 적용하는 삶이 곧 교회의 사명이자 성도의 승리 열쇠라고 역설해 왔으며, 실제로 수많은 사역 현장에서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는 간증이일어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도 주어진 권세로써 영적 전쟁에 뛰어들어, 온 세상에 평안의 복음을 펼쳐 나가야 한다. 예수님이 보내신 그 땅에서, 마귀의 거짓을 대적하고, 자유와 생명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전투를 멈추지 않을 때, 교회는 이 땅에서 더욱 견고한 빛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가르침과 말씀을 붙들고, 일상 속에서부터 전신갑주를 장착한 영적 군사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작된 이싸움은 그분이 이미 이겨 두신 싸움이므로, 우리는 부활의 능력 안에서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가정과 삶, 그리고 지역과 열방에 임하고, 교회를 통해 더 밝은 빛이 세상에 드러날 것을 믿는다